'기계가 된 인간' <모던 타임즈> 줄거리, 주제 그리고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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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된 인간' <모던 타임즈> 줄거리, 주제 그리고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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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던 타임즈 포스터.
영화 모던 타임즈 포스터.

 

■ 줄거리; 공장 부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비루한 삶


영화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는 1936년에 개봉된(국내 개봉은 1989년) 찰리 채플린이 감독한 클래식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기계문명으로 인한 산업화의 인간 소외와 대공황 시대 노동자들의 고난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구성을 소개합니다.

(1) 공장 노동자 (찰리 채플린): 어리숙하고 착한 찰리(트램프)는 현대적이고 자동화된 공장에서 일합니다. 나사를 조이는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의 성격은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붕괴를 야기합니다. 공장 주인은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발명품인 자동 급식 기계를 도입하지만, 이는 노동자들에게 혼란과 피해를 일으킵니다.
(2) 정신적인 충격과 입원: 일의 스트레스와 급식 기계의 영향으로 찰리는 정신적인 충격을 경험하고 병원으로 보내집니다. 병원에서 그는 우연히 코카인을 섭취하여 익살스러우면서도 혼돈스러운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3) 감옥살이 시련: 병원에서 퇴원한 후 트램프는 대공황으로 인해 취직이 힘들어지고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거리를 방황하던 찰리는 우연히 시위 군중에 휩쓸려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됩니다.
(4) 소녀와의 만남 (포레트 갓다드): 찰리는 낙천적인 고아 소녀 가민과 만나게 됩니다. 함께 노숙생활과 가난과 결핍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민은 영화 내내 찰리에게 중요한 동반자가 됩니다.
(5) 공장 일과 감옥: 찰리는 결국 백화점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취직합니다. 그러나 우연히 강도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고 감옥에 또 갇힙니다. 한편 가민은 고아원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6) 행복의 추구: 영화는 찰리와 가민이 손에 손을 잡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희망과 저항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영화 <모던 타임스>는 사회 비판, 유머, 그리고 찰리 채플린의 재치 있는 연출과 멋진 연기로 할리우드 코미디의 클래식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영화는 사운드 영화 시대에 나온 무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산업화된 세계에서 소외된 인간의 상황을 감동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 주제: 자본과 문명의 힘에 소외된 비인간화 고발

 
영화 <모던 타임스>는 20세기 초, 급격하게 문명화 되고 산업회 되는 사회적 도전과 변화를 반영하는 여러 연결된 주제를 탐구합니다. 그 주제들은 현대 세계에서의 기술 발달의 영향,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에 대해 관객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1) 산업화의 비인간화: 영화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산업화와 그에 따른 인간의 소외입니다. 영화는 현대적인 공장의 무자비한 속도와 자동화를 비판하며 노동자들이 거대하고 무감각한 기계 속의 부품이 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찰리가 공장 기계의 톱니 사이로 끌려가는 상징적인 장면은 기술적 발전 앞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2) 자본주의와 착취의 비판: 찰리 채플린은 트램프라는 캐릭터를 사용하여 대공황 시대 노동자 계급이 직면한 혹독한 조건을 강조합니다. 영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풍자적으로 그리며 공장 주인들을 노동자의 복지에 무관심한 존재로 묘사합니다. 효율성과 이윤 추구로 노동력이 착취되는 과정을 악화된 급식 기계를 통해 보여줍니다.
(3) 경제 침체의 영향: 영화 <모던 타임스>는 대공황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대규모 실업과 경제적 어려움의 시기입니다. 영화는 실업자들의 투쟁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반영합니다. 트램프가 안정된 고용에서 실업과 노숙 생활로 이어지는 여정은 이 혼란스러운 시기 동안 많은 이들이 겪은 경험을 그린 것입니다.
(4)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 비록 영화에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절망적인 상황이 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이 내재돼 있습니다. 트램프는 여러 가지 좌절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낙천주의와 결연함을 유지합니다. 트램프와 소녀의 관계는 역경 속에서도 인간 간의 연결과 서로에 대한 지원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5) 현대 기술의 비판: 찰리 채플린은 유머와 풍자를 사용하여 현대 기술의 무분별한 수용을 비판합니다. 자동 급식 기계는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 어떻게 터무니없고 해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6) 단순하고 의미 있는 삶의 추구: 트램프 캐릭터는 더 단순하고 의미 있는 삶을 원하는 욕망을 상징합니다. 영화 내내 그는 현대화되고 복잡한 세계에서 행복과 충족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트램프와 가민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손에 손을 잡고 걷는 마지막 장면은 저항과 기본적인 인간적 존엄성을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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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영화 천재' 찰리 채플린의 영광과 시련

 
'할리우드 천재 영화인' 찰리 채플린의 삶은 성공, 도전, 그리고 예술적 혁신으로 가득 찬 특별한 여정이었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더 많은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초기 삶과 가난: 찰리 채플린은 1889년 4월 16일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찰리 채플린 시니어와 한나 채플린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어려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버지의 건강 악화와 어머니의 정신적인 문제로 어려운 시련을 겪었습니다.
(2) 연예계 진입: 찰리 채플린은 어린 시절에 부모의 무대 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무대와 공연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무용단 '에잇 랭카셔 래드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908년에는 명문 코미디 단체인 카노 컴퍼니에 합류하여 체조 및 마임의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3) 미국 이주와 무성 영화 경력: 1910년에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카노 컴퍼니의 일원으로 미국에서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여행은 미국의 영화 프로듀서 맥 서넛의 주목을 받게 되어 그의 화려한 무성 영화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13년에는 맥 세넷의 키스톤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고 빠르게 '트램프' 캐릭터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단편영화 <베니스에서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Kid Auto Races at Venice)>에서 중절모에 콧수염, 짧은 바지와 지팡이의 '찰리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4)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설립: 찰리 채플린은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창작적 통제를 갖고자 했습니다. 1919년에는 메리 픽포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D.W. 그리피스와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공동 설립하여 감독이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5) 개인 생활과 결혼: 찰리 채플린의 개인 생활은 일련의 결혼과 이혼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그는 1918년에 밀드레드 해리스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그 후 1924년에 리타 그레이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도 이혼으로 끝나며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세 번째 결혼은 1936년에 폴레트 갓다드와 이루어졌지만, 이 또한 이혼으로 끝났으며 두 사람은 친구로 남아 있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결혼은 1943년에 오오나 오닐과 이루어져 양쪽에서 8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6) 무성 영화 명작: 찰리 채플린은  영화 <카드(The Kid, 1921)>, <황금광시대(The Gold Rush, 1925)>, <시티 라이트(City Lights, 1931)> 등 무성 빛나는 영화를 창작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의 독특한 코미디, 감동 및 사회 비평적인 요소를 선보였습니다.
(7) 사운드로의 전환과 <독재자>: 1920년대 말의 산업이 사운드 영화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채플린은 1930년대까지 계속해서 무성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종적으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1940)>를 통해 사운드를 받아들이며 히틀러와 군주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대담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8) 추방과 후기 작품: 정치적 긴장감과 매카시 시대에 공산주의자란 오해를 받은 채플린은 1952년에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1972년에 명예 아카데미상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에는 <라임라이트(Limelight, 1952)>와 <뉴욕의 왕(A King in New York, 1957)>과 같은 주목할만한 작품이 있습니다.
(9) 유산과 명예: 찰리 채플린은 영화 산업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다양한 상을 수상했습니다. 1972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기사작위를 받았습니다. 채플린의 영화적 영향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수많은 감독과 배우에게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10) 사망과 사후 인정: 찰리 채플린은 1977년 12월 25일에 88세의 나이로 스위스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영화의 한 시대가 끝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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