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만인의 연인'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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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만인의 연인'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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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국영의 삶 그리고 영화 인생: 청춘스타 넘어 내면 연기를 선보인 독보적인 배우로...

 

* 장국영의 삶: 고독했던 유년기에서 시대의 아이콘까지

 

장국영은 1956년 9월 12일 홍콩의 부유한 가정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재단사였으나, 부모님과의 유대감이 부족했던 환경 탓에 그는 다소 외롭고 내성적인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12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리즈 대학교에서 섬유학을 공부하던 중,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학업을 중단하고 홍콩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의 연예계 데뷔는 1977년 아시아 가요제에서 2위를 차지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해 부침을 겪기도 했으나, 1984년 히트곡 'Monica'를 통해 홍콩 가요계의 최정상급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칸토팝(Cantopop)'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그는 화려한 무대 매너와 중성적인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1990년대에는 캐나다로 귀화하며 잠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다시 복귀하여 예술적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적 성격 이면의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그는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나 전 세계 팬들에게 깊은 슬픔을 남겼습니다.

 

<영웅본색>
<영웅본색>

 

* 영화 인생: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수놓은 불멸의 연기

 

장국영의 영화 인생은 1980년대 중반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을 기점으로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 작품에서 형사 '송자걸'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이어 판타지 로맨스의 걸작 <천녀유혼>의 순수한 서생 '영채신' 역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등에 출연하며 단순한 청춘스타를 넘어 깊이 있는 내면 연기를 선보이는 독보적인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그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점은 1993년 작 <패왕별희>입니다. 경극 배우 '두지(청데이)'로 분한 그는 성별과 경계를 넘나드는 처연하고도 압도적인 연기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기여하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코미디(<가유희사>), 멜로(<연지구>), 무협, 스릴러(<이도공간>)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으며, 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 장국영 인생 대표작 5편 다시 보기: 세계적인 예술가 반열에 올린 그의 필생 역작 <패왕별희>

 

1. <영웅본색> (A Better Tomorrow, 1986)

홍콩 누아르의 시대를 연 전설적인 작품입니다. 장국영은 형 송자호(적룡)가 범죄 조직원이라는 사실에 절망하며 정의와 혈연 사이에서 갈등하는 열혈 경찰 '송자걸' 역을 맡았습니다. 초반부의 풋풋한 모습부터 후반부의 고뇌에 찬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주윤발의 카리스마에 가려질 수도 있었으나, 장국영은 특유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마스크와 애절한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가 부른 주제곡 '당년정'은 지금도 불후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2. <천녀유혼> (A Chinese Ghost Story, 1987)

장국영을 아시아 전역의 '책받침 스타'로 만든 판타지 로맨스의 걸작입니다. 그는 순진하고 겁 많은 서생 '영채신'으로 분해, 아름다운 귀신 '섭소천(왕조현)'과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나눕니다.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용기를 내는 그의 순수한 연기는 대중에게 깊은 각인을 남겼습니다. 특히 푸른빛의 몽환적인 영상미와 장국영의 미소년 같은 매력이 어우러져, 동양적 판타지 로맨스의 정석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3.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왕가위 감독과 장국영이 만난 첫 작품으로, 그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해 부유하는 청춘 '아비'를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난닝구 차림으로 맘보 춤을 추는 장면과 "발 없는 새"에 관한 독백은 장국영이라는 배우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사랑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고독의 심연에 빠져있는 아비의 모습은 장국영 본인의 고독한 내면과 닮아있다는 평을 받으며 그에게 홍콩 금상장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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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4.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1993)

장국영을 세계적인 예술가 반열에 올린 그의 필생의 역작입니다. 경극 배우 '두지(청데이)' 역을 맡아 남자로 태어났으나 여인 '우희'로 살아야 했던 인물의 비극적인 삶과 예술혼, 그리고 사형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처연하게 그려냈습니다. 화려한 분장 뒤에 숨겨진 슬픈 눈망울과 섬세한 손동작 하나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그의 연기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현실과 연극의 경계가 무너진 채 파멸해 가는 예술가의 모습은 장국영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연기라 일컬어집니다.

 

5. <해피 투게더> (Happy Together, 1997)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두 남자의 위태로운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장국영은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보영' 역을 맡아, 상대역인 양조위와 함께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앙상블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는 대사 한마디로 연인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그의 연기는 사랑의 이기적인 면모와 지독한 외로움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감각적인 미장센 속에서 장국영은 가장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방랑자의 얼굴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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