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개요 및 줄거리: 사막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살인 청부 중개업을 하는 구양봉(장국영)을 중심으로 전개
* 작품 개요
왕가위 감독의 1994년작 <동사서독(Ashes of Time)>은 김용의 무협 소설 '사조영웅전'의 캐릭터들을 모티브로 삼아, 왕가위 특유의 미학으로 재창조한 예술 무협 영화입니다. 무협의 틀을 빌리고 있지만, 본질은 '엇갈린 사랑과 기억의 고통'을 다룬 지독한 멜로드라마에 가깝습니다.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 감독의 황홀한 영상미와 슬로우 모션, 인물들의 고독한 내면 독백이 압권입니다. 2008년에는 편집을 새롭게 한 '동사서독 리덕스' 버전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명대사 중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가 문득 떠오릅니다.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양가휘, 임청하, 장만옥, 양조위, 장학유 등
장르: 드라마, 액션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 줄거리: 기억을 잊으려는 자와 붙잡는 자
영화는 사막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살인 청부 중개업을 하는 구양봉(장국영)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장만옥)이 자신의 형과 결혼하자 마음의 문을 닫고 황야로 숨어든 인물입니다.
매년 경칩이 되면 친구 황약사(양가휘)가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십니다. 황약사는 '취생몽사(마시면 지난 기억을 잊게 해 준다는 술)'를 가져오지만, 구양봉은 기억을 지우는 대신 고통스러운 그리움을 택합니다.
영화는 구양봉의 주막을 거쳐 가는 여러 인물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1. 모용연(임청하): 사랑에 상처받아 자아가 분열된 채 복수를 꿈꾸는 인물.
2. 맹무 살수(양조위):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고향의 복사꽃을 보기 위해 돈을 벌려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검객.
3. 홍칠(장학유):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한 정의감을 가진 젊은 검객으로, 구양봉에게 삶의 허무를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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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기억'이라는 화두로 수렴됩니다. 구양봉은 자신이 떠나온 뒤 연인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고, 타오르는 주막을 뒤로한 채 서쪽으로 떠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 감상 포인트: 장국영, 양가휘, 임청하, 양조위, 장만옥 등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전설적인 배우들의 연기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은 일반적인 무협 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한 작품입니다.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보다 인물의 한숨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네 가지 핵심 감상 포인트를 정리해 봅니다.
1. 무협의 탈을 쓴 '지독한 사랑의 보고서'
이 영화는 화려한 초식이나 문파 간의 대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사랑에 실패한 자들이 사막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어떻게 무너져가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주인공 구양봉은 자존심 때문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고, 황약사는 사랑받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줍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무술은 그저 그 고통을 표출하거나 잊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인물들의 엇갈린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무협 영화가 아닌 한 편의 시적인 멜로드라마를 만날 수 있습니다.
2. 크리스토퍼 도일의 '황홀한 영상미와 미장센'
촬영 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사막의 거친 질감과 인물의 고독을 탐미적인 영상으로 구현했습니다.
• 스텝 프린팅 기법: 프레임 중첩을 통해 움직임을 잔상처럼 남기는 기법으로, 전투 장면을 물리적 타격이 아닌 심리적 동요나 환상처럼 보이게 합니다.
• 빛과 그림자: 주막의 격자창을 투과하는 빛의 산란은 인물들의 불안정한 내면을 시각화합니다. 특히 리덕스 버전에서 더욱 강화된 강렬한 색채 대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습니다.
3. '시간과 기억'에 대한 철학적 성찰
"인간의 번뇌가 많은 이유는 기억력 때문"이라는 대사처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입니다. 과거를 잊게 해 준다는 술 '취생몽사'는 이 영화의 핵심 메타포입니다. 기억을 지우고 싶은 자(황약사)와 기억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자(구양봉)의 대비를 통해, 왕가위는 '기억이 곧 존재의 본질'임을 역설합니다. 잊으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의 역설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4. 당대 최고 배우들의 '눈빛 연기'와 고독한 내레이션
장국영, 양가휘, 임청하, 양조위, 장만옥 등 다시는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전설적인 배우들의 연기 합이 정점에 달해 있습니다. 왕가위 영화 특유의 방백(독백)은 배우들의 절제된 표정과 어우러져 관객의 가슴에 깊이 박힙니다. 특히 고독의 끝단에 서 있는 구양봉 역의 장국영이 보여주는 허무한 눈빛은 영화의 마침표와 같습니다.
*Tip: 영화를 보실 때 배경 음악에도 집중해 보세요. 첼로의 깊은 울림이 사막의 고독한 바람 소리와 섞여 애절함을 극대화합니다.
■ '고독과 시간의 미학' 왕가위 감독 대표작 다시 음미하기
왕가위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곧 '고독과 시간의 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사서독> 외에 그의 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 3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1.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
홍콩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과 상실을 다룬 작품입니다. 실연의 상처를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달래는 경찰 223과, 단골 식당의 점원 페이와 기묘한 사랑을 시작하는 경찰 663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스텝 프린팅' 기법을 활용한 속도감 있는 영상과 'California Dreamin'등 감각적인 OST가 어우러져, 1990년대 스타일리시한 홍콩 영화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는 명대사를 남긴, 왕가위 입문자에게 가장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홍콩의 중국 반환(1997년)을 앞두고 미래가 불투명한 홍콩 청춘들의 방황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2.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제목과 달리, 이루어질 수 없는 성숙하고도 절제된 사랑을 그립니다. 1960년대 홍콩, 각자의 배우자가 외도를 저질렀음을 알게 된 두 남녀가 서로에게 서서히 끌리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좁은 복도와 계단에서 스치듯 마주치는 장만옥의 화려한 치파오와 양조위의 깊은 눈빛은 그 어떤 신체적 접촉보다 강렬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느리게 흐르는 첼로 선율과 미니멀한 대사 속에서 억눌린 욕망과 애틋한 그리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영상 소설 같은 작품입니다. 스무 벌이 넘는 장만옥의 치파오 패션을 감상하는 것은 황홀한 덤입니다.
3. <해피 투게더> (Happy Together, 1997)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끊임없이 헤어지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두 남자의 지독한 사랑을 다룹니다. 이구아수 폭포를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집착, 질투,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이 거친 입자의 흑백과 원색의 화면을 오가며 강렬하게 묘사됩니다. 홍콩 반환을 앞둔 당시 홍콩인들의 불안한 정체성을 '떠도는 연인'에 투영했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한마디가 가진 희망과 절망의 무게를 가장 처절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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